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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담양주간신문] "깐깐한 시민정신" (4부)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07/12/13
ㆍ조회: 13294  
"깐깐한 시민정신" (4부)
 
 
지자체 갈등 원인진단과 대안마련을 위한 특별기획

우린 대부분의 북유럽국가들을 ‘선진국’이라 평가한다. 지배적인 의견이 그러하다. 왜 그런지 잘 몰랐지만.

그러나 다행이도 굳이 찾아보려 애쓰지 않아도 그 이유가 눈앞에 펼쳐졌다. 파노라마처럼.

북유럽의 가치는 무엇일까.

만만디, 대륙기질, 내것 네것 철저, 쫌생이. 낯설지만 무슨 말이지 짐작 가는 이 단어들은 중국에만 상관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러한 말들이 북유럽에서도 딱 들어맞을 줄이야.
철저했다. 북유럽, 적어도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독일 이 나라 사람들은 철저했다. 결코 나의 가치를 뺏기지 않는다는 것. 또 남의 가치를 빼앗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 줄건 주고 받을건 받는다는 것.

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셨다. 물이 먹고 싶었다. 돈 주고 사먹었다. 이만큼  ‘깐깐한 그들’이 만든 ‘선진화된 절차’를 한번 보자.


정보공유절차

‘일단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후일 나에게 편하다’라는 것이 그들의 지론이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사업시행도 못해보고 파산을 맛볼테니.

빈공항이 그런 사례 중 하나다. “‘만약’ 세 번째 활주로(현재 빈공항은 두 개의 활주로가 있음)를 만든다면 이렇게 만들겠다”고 합의하는데만 5년이 걸렸다.

정부사업이었다면 국가가 애국심에 호소라도 했겠지만 민간업자가 공항의 주인이라서 그랬을까. 아무튼 사업주가 사업을 하려면 주민들에게 사업내용을 공개해야 하고 주민들은 그들의 의견을 주장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 법적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때 세 번째 활주로는 아직 정부승인도 얻지 않았으며 기초설계만 나왔지 세부적인 설계는 나오지도 않았다.

‘빈’이라는 도시는 유럽의 관문이다. 빈공항회사는 빈공항을 유럽의 핵심 허브공항으로 개발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포부’를 밝힌 상태다.

이에 따라 ‘앞으로 만들지도 모를’ 제3의 활주로를 위해 먼저 한 것이 ‘누가 협상테이블에 앉을 것인가’이다. 이름은 ‘빈공항 대화포럼’이라 했다. 활주로가 증설됨으로써 발생하는 소음문제나 환경문제는 다음이고 서로가 인정하는 상대방을 테이블 건너편에 앉히는 데만 1년을 소요했다. 그들은 이를 ‘준비과정’으로 또 ‘기초’로 보고 기꺼이 2000년 1월부터 2001년 3월까지 1년2개월의 시간을 투자했다.

그다음 그들이 시작한 건 ‘서로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아는 과정’이었다. 자신이 인정하는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반대되는 양측은 서로를 포용하게 되고 입장을 이해하게 됐다. 물론 처음부터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대화에 참여했던 어느 주부의 주장이 관철돼 가는 과정을 보면서 주부와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같은 비중을 가지고 있다는 분위기가 관철되고 좋든 안 좋든 ‘모든 정보를 모두가 공유’하는 과정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쌓여 갔다.

중재자로 나선 변호사 프라다(정부에 의해 고용됐음)는 이러한 과정을 ‘예술’이라 표현했으며 ‘균형을 맞추는 것’ ‘믿음을 형성하는 과정’이라 설명했다.

100개가 넘는 지역에서 대화에 참여했으며 주민들의 주장대로 활주로 방향을 바꾸게 되자 2천억 유로가 더 소요될 것으로 계산됐다. 주민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자신의 지역과 먼 곳으로 활주로를 보내기 위해 복마전이다.

그렇다고 주민들이 ‘굶주린 늑대’는 아니다. 애초 제3활주로의 야간비행은 주민들의 숙면을 위해 금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주민들도 공항이 진정한 기능을 발휘하려면 야간비행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으며 이에 대해 의연히 대처해 야간비행을 인정했다.

회사측도 아직 있지도 않은 제3활주로와는 별개로 공항주변 모든 창문을 방음창으로 교체했으며 앞으로도 1년에 5천만 유로를 투여할 예정으로 소음평균치를 낮추기 위해서라면 항시적으로 노력하기로 했다.

회사는 무슨 이유로 이렇게 끌려 다닐까. 괜한 걱정이었다. 빈은 유럽의 관문이었고 오스트리아항공 한 개 회사만으로도 공항이용은 50%를 차지한다.  만들면 만들수록 이용률은 높아진다는 것이 회사측의 계산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회사가 부담했던 비용이 승객들에게 전가되는 건 아니다. 그들의 추산에 의하면 현재보다 승객 1인당 불과 1~2유로 안팎이었다.

프라다 변호사도 처음엔 5년씩 걸릴 줄 몰랐다고 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갈등해소는 심리적인 문제라고 했다. 누가 더 논리적이고 누가 더 호소력이 짙은가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지금 상대방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문제해결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함께 만들어 간다

누가 전문가인지는 그들에게 중요치 않았다. 협상테이블에 앉은 사람이라면 동등한 발언의 무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민간업자와 주민이 ‘모든 정보에 대해 모두가 공유하는’ 것을 보았다면 네덜란드 교통수자원관리부에선 ‘PBK'라 하여 정부부처와 주민이 함께하는 과정을 보았다.

네덜란드 정부는 해양국가로서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9천만 유로를 들여 로테르담을 북유럽 대표항구로 만들 ‘계획’이다. ‘로테르담 주항만 개발 프로젝트’라 명명된 이 계획은 우리가 간척지를 만들 듯 바다를 메꿔 국토를 넓히는 사업이었으나 우리가 간척지에 갖는 인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로테르담의 ‘담’은 ‘댐’을 의미하는 것으로 네덜란드엔 ‘담’이 붙은 도시명이 많다. 우린 또 네덜란드가 바다보다 낮아 둑 즉 ‘댐’을 쌓아 만든 나라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네덜란드인에게 국토확장공사가 갖는 의미는 우리가 이순신 장군에 갖는 의미와도 같아 보였다면 철없는 과언일까.

네덜란드 정부에게 이러한 ‘성스런 계획’을 전문가 집단에 맡겨 국민들에게 ‘정부가 일 잘 하고 있으니 한 번 보세요’ 식으로 홍보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고 법을 입안한 관료도 국민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므로 국가의 대형프로젝트에 국민이 참여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게다. 특히 국토확장공사라면.

그런데도 정부는 한 없이 불어나는 예산을 걱정해야 하고 내각제라 의회의 동의 없인 예산이 집행되지 않으니 국민동의절차를 무시할 수 없고 의회는 국민의 눈치만 보고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 국민들에겐 땅 한 조각, 작은 수로하나 모두 그들의 노력으로 만든 것이기에 그들의 의식으론 ‘복잡하고도 지루하며 낭비라 느껴질 정도’의 것이라도 반드시 합의를 보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PBK'는 단순하다. 첫째, 구상된 사업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주민과 공유하고 지속적으로 정보를 공개한다. 둘째, 전문가나 시민단체의 참가를 받아들이고 계획에 의해 피해보거나 피해볼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한다. 셋 째, 의회에 보낼 안을 만들어 보낸다. 넷 째, 의회에서 통과되면 그 때 계획을 수립한다.  

‘로테르담 주항만 개발 프로젝트’를 브리핑한 마를로스 비세르 양은 “PBK가 국가재정을 축낸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 정책사업을 홍보해 국민들의 이해를 얻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정부의 방만한 예산운용을 의회를 통해 견제할 수 있으므로 국가나 국민으로선 어떤 형태로든 이익이라는 것이다.

로테르담 항만은 이렇게 'PBK'를 걸친 끝에 2013년에 완공될 예정으로 그들의 ‘만만디’는 느림의 미학일 뿐만 아니라 ‘철저함’이었다.

우리도 하나의 대형프로젝트를 시행하기 위해선 수년씩 걸린다. 하지만 그 수년 동안 담당공무원과 관계공무원 이외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설령 청문회 등의 공개절차를 거쳤다 하더라도 ‘철저함’의 결여로 ‘수순밟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 많다.


진정한 가치에 타협이란 없다

네덜란드의 어느 목장. 오른쪽엔 동쪽 지평선 왼쪽엔 서쪽 지평선. 하늘이 반구(半球)로 보였다. 빙하기가 끝나고 이동하던 빙하에 의해 땅이 평평해 졌다. 당시 활발했던 화산폭발로 화산재가 내려 앉아 네덜란드의 흙은 거멓다.

광활한 목장에서 나온 각종 축산물과 유제품은 전세계로 팔려나가 농민들의 수입이 도시근로자보다 2배에서 4배가량 많다.

그런만큼 이들이 땅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우리와 다르다. 더욱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사는 담양촌놈’에겐 그들의 대륙성 기질을 쉽게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네덜란드 고속철도회사를 찾았다. 고속철도를 놓는데 지중해와 스페인까지  연결돼 유럽을 관통하는 고속철도를 놓고 있다. 북유럽 최고의 항만을 가지고 있는 네덜란드로선 해상운송과 육상운송을 엮어 전유럽을 아우르는 역사적인 공사일 게다.

1973년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2000년 4월에야 첫삽을 떴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행정력이 낭비되고 일에 대한 정력이 소모되고 있는지를. 하지만 건물하나도 백년씩 걸려 짓는 그들에게 겨우 몇 십 년 투자한 것은 명함도 못 내민다.

그 30년 동안 뭐했나. 답은 쉬웠다. “고속전철이 지나가는데 어떻게 하면 지나가지 않는 것처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연구와 실천이었다.” 우리나라 고속도로처럼 3~4m 둑을 올리고 마을을 지나가면 방음벽을 세워 마치 커다란 성벽으로 지역과 지역을 갈라놓는 ‘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있는 듯 없는 듯 그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땅의 가치를 최고로 높이는 모양으로 철도를 놓고 있었다.

이들의 고속철도를 100km로 본다면 6km만 일반 땅위에 있을 뿐 55km는 브리지 형식이거나 터널이고 나머지 35km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고속철도가 지나가는 노선 대부분은 농업지역이다. 농가지역 땅 소유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쉬운 길을 택하려 했으나 ‘눈앞에 걸치는 게 싫은 그 나라 국민성은 터널과 땅파기를 선택했다. 경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 투자한 비용이 전체 공사금액의 절반이 넘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가장 아끼는 ‘그린하트’라는 지역이 있다. 이곳은 조망권과 농업적 기능, 수로 등 그들이 아끼는 ‘절대적 가치’가 교차중첩된 곳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이는 ‘김제평야’정도 될까.

그들은 이 지역을 살리기 위해 8.2km의 터널을 뚫었으며 이 비용으로 4500억 유로를 투입했다. 그 어떤 장애물도 싫었던 그들은 땅속을 선택했고 그들만의 가치를 보존했다.

사업시행자인 네덜란드 레일웨이와 에어라인 두 곳은 국민들의 지속적인 주장에 뜻을 받아들이고 과감한 투자에 나섰다. 주장을 펼 수 있는 사람은 네덜란드 국민이면 어느 누구나 가능하며 정보공개 또한 그러하다.

6개의 시공자가 참가해 시작한 이 사업이 그렇다고 해서 힘들어 진 것도 아니다. 최초 사업비에서 겨우 16% 상승됐다.

사업자와 국민 모두 그들이 사랑하고 아끼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며 그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양자는 머리를 맞대고 함께 풀어나갔다./서영준 記者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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