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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제 2강 '민주주의 심화와 정치적 갈등의 의미' 강의 요약 및 후기  
작성자 rosa
작성일 2011/11/16
ㆍ조회: 9952  

2011년 제3기 갈등해결과 공존을 위한 시민학교 


 

제2강: 민주주의 심화와 정치적 갈등의 의미' 강의 요약 및 후기

            강의 일시 및 장소: 2011년 11월 9일 저녁7시 사회갈등연구소 강의장

            강                   사: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2011년 11월 9일 '2011년 제3기 갈등해결과 공존을 위한 시민학교' 제 2강 '민주주의 심화와 정치적 갈등의 의미' 강의가 있었습니다. 강의요약문을 보내드립니다.


 

강의 요약문

1. 갈등과 민주주의

역사적으로 보면, 근대 이전에 갈등은 공동체의 분열과 다툼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공익 우선, 공동체에 헌신이 시민의 의무였음. 따라서 개인, 집단은 부정시되었고 정치가 그 해결을 위한 도구였죠. 그러나 정치는 전쟁으로 이어지기 쉬었으며 정권 변화는 자주 폭력을 동반한 정변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근대 이후 갈등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개인, 집단적 차이가 사회 조직의 중심 원리가 되었고 정치는 그런 부분적 이익과 열정을 대표하고 경쟁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유명 사상가의 이야기로 살펴보면, 마키아벨리는 갈등을 유익한 갈등과 유해한 갈등으로 나눴고 왕과 귀족의 권력이 대립하고 민중 역시 정치에 참여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만들어가는 것의 가치를 강조하였습니다. 제임스 매디슨은 파벌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파벌을 없애려는 것은 곧 인간의 정치를 없애는 것과 다르지 않은 비현실적 접근이라 주장하고 파벌의 폐해를 줄이는 것이 필요함 역설하였습니다. 알버트 허시만은 정치란 갈등을 나눌 수 있는 형태로 변화시켜 상호 조정이 가능하고 사회통합의 효과를 낳을 수 있게 해야 함을 주장하였습니다.

지금의 민주주의는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전환하는 정치과정으로 갈등을 사회에서 그대로 표출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대표하게 하고 경쟁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책임성과 통합성을 강화시키는 방법에 그 핵심이 있습니다.

 

2. 민주주의의 역사와 의미

민주주의(dēmokratía) 용어는 BC 6세기경 고대 그리스에서 아테네라고 하는 폴리스의 정치형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아테네 민주정이 몰락한 다음 민주주의라는 말 자체가 오랫동안 역사에서 사라졌다가, 13세기 중엽, 오랫동안 잊힌 상태로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이 라틴어로 번역. democracy로 표현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말 프랑스어 démocratie의 번역어로 소개되면서부터입니다.

19세기 말까지 정치철학자들과 지식인들에게 민주주의를 ‘다수의 전제’나 빈자들의 선동 정치로 여기는 부정적인 의미였습니다. 장-자크 루소의 책 󰡔사회계약론󰡕에서, 민주주의는 신들에게나 어울리는 제도이지 인간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몽테스키외나 제임스 메디슨처럼 현대 민주주의의 제도적 디자인을 이끈 정치철학자들도 자신들이 만들고자 하는 것은 고대 아테네와 같은 민주정이 아니라 공화정이라고 주장합니다. 프랑스혁명 이후 대중의 정치 참여 요구가 강해지면서 공화주의라는 말과 민주주의라는 말이 병용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민주주의라는 말이 더 자주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확고한 시민권을 갖게 된 데는 투표할 권리를 갖지 못했던 노동자와 여성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보통선거권 획득 운동의 성과와 함께, 이들이 대중정당이라는 조직 형태를 발명해 기존 체제에 도전했던 것이 결정적인 역할이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시민권을 갖는 과정에서부터 노동운동과 보통 사람들의 언어. 현대 민주주의는 배제되었던 사회 하층에 참여하게 하고 스스로 대표하게 하는 정치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바이마르 체제는 대표적인 민주정치의 실험이었으나 정치 불안이 계속되어 군국주의자들이 이에 대한 불만을 공공연하게 표출, 결국 혁명파들은 민주주의가 개량에 대한 환상을 만들고 대중을 혁명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며 민주주의를 부정하였습니다. 민주주의가 사회적 합의에 가까운 지지를 받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파시즘과 나치즘, 세계대전 경험을 통해 민주주의가 안정적 작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달은 이후부터입니다.

 

3.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이해

 외국의 사례에서 전제군주제, 자유주의 혁명, 계급투쟁과 내전, 파시즘 등 정치갈등과 세계대전을 통해 얻어진 가치들이 확산되었고 그것이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보수주의, 자유주의, 기독교 공동체주의 등과 같은 이념이 중심이 됩니다. 이들 나라에서는 사회주의자, 보수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좌파나 우파 등의 용어는 써도 민주주의자 혹은 민주파라는 용어는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군주정(monarchy)이나 귀족정(aristocracy)과는 달리 democracy는 쟁취하고자 하는 목적이자 가치의 측면도 갖고 있습니다. 

한국은 유럽과 달리 그러한 정치 변동이 없었고, 입헌주의나 보통선거권, 정당출현도 외부의 힘에 의해 별다른 사회 갈등이나 정치투쟁을 동반하지 않고 실현되었습니다. 그에 분단과 전쟁은 좌의 이념은 북한이, 그리고 우의 이념은 남한이 독점적으로 대표하는 비정상적 정치체제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화 운동이 실천되고 일종의 ‘전체주의적 민주주의’로서 표현되었습니다. 이에 자유주의의 요소, 공동체주의의 요소, 사회주의의 요소가 민주주의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결국 모든 문제는 ‘민주주의의 후퇴냐 진전’으로 단순화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의인화되기도 하며 ‘촛불 민주주의’나 ‘광장 민주주의’와 같은 정서, 민주주의를 위해 죽는다는 등의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신화적 민주주의와 현실적 민주주의를 구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민주주의가 완벽한 최선이고 모든 것이 아닌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실천해 온 가치와 목표가 소중하고 여전히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개선해 가야 할 것들이 많기에, 그에 맞게 인간이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이론을 생각해야 합니다.

 

4. 갈등과 민주주의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의 󰡔절반의 인민주권󰡕에서 갈등이 민주주의의 엔진이라고 말하며 갈등을 키우고 사회화하는 것을 대안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갈등을 사회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정당이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즉, 정당정치가 사회 갈등을 폭넓게 조직하고 동원하고 통합하지 못한다면 그때의 ‘시민 주권’은 실현되지 않습니다. 갈등은 지역・종교・소득・직업・성・고용형태 등 우리가 서로를 정의하는 사회적 차이. 노동자로서, 여성으로서, 특정 종교의 신자로서, 비정규직으로서 각자가 공적 의제에 대해 이견을 갖는다면 그것이 집단적 사회 갈등의 분획선입니다. 이러한 집단으로 호명되지 않고는 사회 속에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이런 갈등 때문에 만들어진 정치체제이고 이 때문에 존재합니다. 샤츠슈나이더는 사회집단은 각자의 협소한 이익과 관심의 범위를 넘어 갈등을 폭넓게 조직하려고 해도 어느 수준에 이르면, 갈등의 범위를 확대하자니 기존의 참여자가 줄고, 이들의 참여를 유지하자니 갈등의 범위를 축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므로 그 동원이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사회집단에 의한 정치적 동원의 불완전성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사회집단들이 정부를 향해 경쟁적인 압력 행사를 최대한 조직한다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그 영향력은 사회의 상층에 유리한 ‘상층 편향성’이 있어 문제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갈등의 범위와 하층의 참여 확대를 ‘갈등의 사회화’라고 합니다.

민주주의에서 갈등의 범위를 확대하는 최선의 방법은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정치의 기능이기도 합니다. 갈등이 공적 영역에서 정당에 의해 조직되면 갈등의 규모는 커지지만 갈등의 수는 줄어듭니다. 문제는 우리사회의 정당 인식이 표피적이고 협애해서 엘리트집단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에 있습니다.

정당이란 가장 고전적인 정의로 ‘조직화된 사회적 의견’ 혹은 서로 경합하는 ‘세계관’으로 그런 세계관이나 의견의 수가 둘이면 양당제, 그 이상이면 다당제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당이 생활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일이 줄어들게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은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어울릴 수밖에 없기에 모임을 가질 때마다 “정치 이야기는 안 돼.”를 외칩니다. 따라서 정당들이 지금보다 더 사회생활과 생활 세계 안으로 깊이 들어와야 합니다. 또한 그는 정당을 “다수의 동원에 적합한 특수한 형태의 정치조직”,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라고 주장하고 “시민은 온전한 주권자가 아니라 절반의 주권자일 수밖에 없다.” 고 주장합니다.

 

5. 한국의 정당정치

1987년 12월 대선과 다음 해 4월 총선에서 경쟁했던 네 대안 가운데 세 대안은 김종필(민주공화당)과 1960년대 말 ‘40대기수론’의 두 경쟁자인 김영삼(통일민주당)과 김대중(평화민주당). 나머지 하나인 노태우(민정당)가 있었습니다. 이는 한국 민주화가 권위주의체제의 붕괴에 의한 이행이 아닌 협약에 의한 이행으로 민정당 노태우는 정초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권위주의 통치 기간 동안 사회는 변화되었습니다. 산업화, 계층분화, 재벌중심 경제구조 완성, 대기업 중심의 노동조합운동 등이 그러합니다. 1997년 IMF 사태로 세계화의 충격, 기존의 노동시장 구조 및 금융 질서의 변화는 정치가 60년대 말의 정당 대안들과 권위주의 파생 정당들이 경합하는 체계로 바꾸게 합니다. 크게 변화된 사회 갈등의 구조와 낡은 정당 체제 사이의 격차 내지 괴리 속에서 ‘현상’이 만들어짐 이인제 현상, 노무현 현상, 문국현 현상, 조국 현상, 문재인 현상, 안철수 현상 등이 그러합니다. 즉 변화된 사회적 요구가 정치적으로 표출, 집약, 조직되는 새로운 정당체제로 전환되지 전까지는 지금까지와 같은 상황, 즉 국면에 따라서는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은 불만과 항의, 원망의 에너지가 분출하지만 그 국면이 지나 먼지가 가라앉고 나면 기존의 구조나 체제는 변화된 것 없이 건재하게 유지, 작동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열망-실망의 사이클’이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6. 우리의 과제

생명, 자유, 평등, 행복 추구 등은 민주주의 국가 사이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기본 규범 내지 가치. 이와 관련 국가 간 민주주의의 성취를 통계적으로 조사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하나는 진보 정당의 경쟁력(집권 기간, 득표 경쟁력 등)이 큰 나라일수록, 다른 하나는 (보통 노조 조직률, 노사 협약 적용률, 노조의 중앙 집중화 정도로 평가하는) 노동조합의 힘이 강할수록 결과가 좋다는 것입니다.

즉 이념적・계층적 대표의 범위가 충분히 넓은 사회일수록 그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들의 관심과 이익이 평등하게 고려하게 됩니다. 또한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조건 위에서 민주주의가 실천되는데, 노동이라고 하는 가장 중요한 생산자 집단의 이익과 열정이 기업 운영과 노사 관계, 나아가 정당 체제의 차원에서 어느 정도 평등한 권리를 향유하느냐가 중요한 요소입니다.

보수와 진보가 좋은 경쟁 체제를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민주정치의 발전에 있어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박찬표 박사의『한국의 1948년 체제』에서,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 의회에서 노동과 관련한 의제가 어떻게 변화되었나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즉 민주화 이전은 의회에서 야당 대표자 연설문에는 “노동자, 농민......”을 호명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때 민주화는 노동법 개혁, 분배개선 등의 노력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정부에서 열린우리당, 민주당 교섭단체장 연설에서는 노동이라는 단어조차 언급되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는 2004년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에 성공과 관련 있습니다. 비정규직, 양극화, 무상급식 등이 주요 의제가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시민 스스로 만든 법과 제도에 시민 스스로 복종하는 체제입니다. 아무리 좋은 법이나 제도가 만들어진다 해도 시민이 입법자가 아니라면 그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비정규직을 포함해 노동문제가 심각하다고들 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부당한 현실을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는 것만큼 사태 개선에 더 좋은 효과를 갖는 것은 없습니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이 집권할 수 있을 때, 사회적 약자 집단도 무시당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온정에 의존하지 않는 주체적 시민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도 커집니다.

사회적으로는 이미 중대한 갈등 집단들이지만 그들의 요구와 열정이 배제되어 있는 상태로 있어서는 민주주의 발전도 어렵고 체제 안정도 어렵습니다. 또한 정치적으로 대표하게 하는 일, 사회의 갈등 구조에 상응하는 정당체제를 갖는 일은 한국 정치의 중심 문제라 할 것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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