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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국책사업, 상처와 후유증을 밝힌다-4년째 '악몽'에 신음…뿌리째 갈라진 부안  
작성자 rosa
작성일 2007/07/18
ㆍ조회: 11074  
4년째 '악몽'에 신음…뿌리째 갈라진 부안

서복원 기자

[집중기획취재] 국책사업, 상처와 후유증을 밝힌다
1. 국책사업, 상처와 후유증의 현장을 가다 ① 부안

본보는 부안사태 4주년을 맞아 지역사회가 겪고 있는 상처와 후유증에 주목합니다. 방폐장 유치를 둘러싼 정부와 주민들의 대립은 끝난 듯 하지만 정부에 대한 불신감은 잠복해 있습니다. 더군다나 찬성과 반대로 나뉜 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해결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핵’은 갔지만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삶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속에서 갈등으로 채워진 공동체는 시름시름 앓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상처와 후유증을 우선적으로 조명해 해법의 길을 차근차근 모색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드림>

1. 국책사업, 상처와 후유증의 현장을 가다 ① 부안
2. 전문가 초청 기획대담 - 상처, 원인과 해법은
3. 국책사업, 상처와 후유증의 현장을 가다 ② 안면도/경주/영월
4. 정부, 지자체, 지역언론의 책임을 되묻는다
5. 후유증 해결을 위한 체계적인 진단이 필요하다
6. 상처 치유, 진상규명 해외현장 탐방 ① 라틴 아메리카
7. 상처 치유, 진상규명 해외현장 탐방 ② 미국
8. 해법 모색을 위한 주민 초청 포럼
 


부안이 심한 병을 앓고 있다. 정부와 자치단체의 무리한 방폐장 유치 추진이 지역사회를 훑고 지나간지 4년이 지났다. 정부가 경찰을 동원해 한바탕 폭력을 행사하고 지나간 바로 그 자리에서 주민들은 찬성측, 반대측 할 것 없이 그 후유증을 혹독히 치러내고 있다. 참여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주민 대부분은 한쪽의 입장에서 부안사태를 경험했고 그 뒤 좁고 폐쇄적인 공동체내에서 한번 표면에 드러난 갈등은 해소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각 개인들의 내면과 마음은 깊은 상처로 황폐해지고 있다.

머리가 폭력을 향할 때가 있다

비 내리는 지난 9일, 2003년 경찰의 폭행에 머리를 다쳤던 상서면의 A씨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부안사태를 상기시키자 술잔을 기울이며 다짜고짜 “죽이고 싶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분출할 수 없기에 더 힘겨운 분노다.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고 그렇다고 말로도 쉽게 표현되지 않는 그 무슨 응어리 같은 마음의 병이다.

A씨는 “전경들한테 맞은 뒤 그 장면이 지워지지 않고 머리가 폭력적으로 될 때가 있다”며 본인조차 이해하기 힘든 증상을 호소했다. 그 억울함에 대한 분노가 머리를 통해 몸에게 적색 신호를 보내는 모양이다.

B씨는 사태 초기 군청앞 반대집회에서 참가해 노인들에 대한 경찰의 폭력을 막으려는 행동이 발단이 돼 1년6개월간이나 구속됐었다. 2003년 7월22일 집회 말미에 전경들이 둘러싸고 있던 할아버지를 에워싸다 무지막지하게 ‘밟혔다’. 그는 “머리가 터지니 열이 났고 정신이 없는 가운데 차를 몰고 전경들을 향해 돌진했다”고 기억했다. 다행히 큰 인명 피해 없이 트럭은 멈추었지만 그는 경찰로부터 기절할 정도의 집단 폭행을 당했다. 1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그에게 두 차례의 집단폭행이 있었고 그 여파로 지금까지 허리를 제대로 쓸 수가 없다. 힘이 좋아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다니던 어부가 힘을 쓰지 못해 이제는 식당 관리인이 되고 말았다.

진서면 B씨 역시 경찰의 곤봉질, 주먹질, 발길질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잊고 싶어도 몸이 아파 뭔 일을 제대로 못하니 잊을 수가 없다. 감옥에서 나온 뒤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소용이 없다. 폭행이나 감옥살이가 자꾸 생각이 나 어떤 일에 부딪힐 때 잘 안 풀리면 ‘한번 (감옥에서) 살았는데 두 번이면 어떻겠냐고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드는 게 가장 어렵다”고 힘겨워했다.


 
한 주민이 경찰의 폭행으로 머리에 심한 부상을 입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부안독립신문 자료사진>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주민들은 폭력으로 무장한 정부와의 일전을 치르는 가운데 군 행정이나 이웃과도 심각한 ‘내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국가는 할 일을 다 한듯 떠났고 남은 문제는 치고 박고하던 지역공동체 내부의 몫으로만 남겨져 있다. 
 
 부안의 ‘트라우마’

공동체 안의 집단적 상처
현재까지도 공동체 내에서 갈등 이어져
심리적 외상 증후군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이해되는 ‘트라우마’는 원래 여성들의 히스테리나 참전 군인들의 후유증을 관찰하면서 이를 치료하고자 생겨난 서구 정신의학의 한 개념이다.
한국에서 사회적 사건과 관련된 트라우마에 대한 연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나 일제시대 여성들의 성노예 동원과 관련해 일부 진행이 이뤄졌다.
트라우마를 일정기간 동안 예기치 못한 외부 충격에 접한 뒤 겪게 되는 마음의 병이라고 할 때 부안은 몇 가지 특수성을 안고 있다.

첫째, 소위 ‘부안사태’가 지역공동체내에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부안사태의 시기를 2003년 7월11일(당시 김종규 군수의 방폐장 유치 선언)부터 2004년 2월14일(유치 찬반 주민투표 실시)까지 잡는 것은 외부자의 시각이다.

둘째, 부안은 트라우마를 앓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계속 다시 만들어내는 판이 굳건하게 짜여져 있다는 점이다.

셋째, 부안의 트라우마는 개인들에게 국한돼 있는가하면 공동체 전체가 겪고 있기도 하다.

즉, 일반적인 트라우마와 달리 부안에서의 트라우마는 폐쇄된 공동체 안에서 서로 주고받고 있는 집단적인 마음의 병이다. <서복원 기자>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극좌’로 인식하고 있다. 쟤는 성향이 저런 사람으로 못을 박아놔 대화도 안된다. 지금은 그런 게 더 심하다. 뭔 얘기를 하려고 하면 꺼려하고 홍역이나 전염병에 걸린 사람도 아닌데. 예전에는 같이 앉아서 토론이나 얘기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전혀 안된다. 내 성향은 못이 박혀 있으니까.”

2003년 서해안 고속도로 점거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를 한 주산면 C씨의 고충이다. 사태는 끝나고 삶은 계속되는 데 불현듯 닥치는 이 삶의 어느 순간 순간이 문제다. 반대측이나 찬성측이나 서로 경계의 시선을 의식한다. 그래서 또 다른 분란이 우려돼 함께 자리를 만들고 말을 꺼내는 것조차 두렵다.

그저 나아진 게 있다면 당시에는 인사조차 안했지만 그래도 요즘은 겉으로 인사 정도는 주고 받는다는 정도다. 그러나 서로 외면하게 되는 마음은 숨길 길이 없어 갈등이 심했던 경우는 아직도 인사조차 나눌 수 없다. 좁은 지역에서 만나고 부딪힐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벌써 4년동안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행안면의 D씨는 이 지역에서 찬성쪽으로 이름난 인사였다. 그래서 반대쪽으로부터 타박도 많이 받고 고충도 겪었다. 그는 “내가 사과할 사람도 몇 명 있다”며 갈등의 일화를 털어 놓는다.

“내가 못할 짓을 한 것은 나한테 침 뱉고 욕하고 잘못한 사람을 눈여겨 봤다가 공동묘지로 불러내 협박한 적이 있었다.”

기회만 있으면 옛날 일을 풀어보려고 한다지만 아직도 앙금은 여전하다. 그는 남들이 던지는 시선을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그는 “넘이 스트레스를 줘도 안 받는다. 스트레스는 책을 통해 풀려고 한다. 책하고 싸우고 책에서 본대로 실천을 하려고 한다”며 나름의 해법에 따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책이 이웃과 주고 받은 오랜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혼자의 결심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역시 마음속에서 병을 삭힌다. 그는 “인사할 때 외면당하면 속으로 화나도 겉으로는 웃는다”고 덧붙였다.

 
2003년 11월 일반인의 통행마저 가로막고 있는 전투경찰들. <부안독립신문 자료사진>

‘이중의 마음’을 겪는 괴로움

주민들이 부안사태 뒤 앓는 마음의 병 가운데 한 가지는 확고했던 자기의 ‘신념’을 스스로 저버리게 되는 상황에 직면할 때 생기는 혼동스러운 느낌이다.

“사실은 미운 사람이 있어도 표현 못하는 것이 힘들다. 같이 얘기하는 자리가 불편하다. 더군다나 장사를 하다보니 손님으로 온 사람을 가라고 할 수도 없고. ‘찬핵’ 사람들이 손님으로 와 있는데 ‘반핵’ 사람들이 오면 괜히 미안해지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는 E씨는 먹고 살아야 하는 생계에 매여 과거에 스스로 선택한 ‘반핵’에 떳떳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는 자신을 대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자기 생각에서 나오는 자신의 말을 떳떳하게 못하게 되는 상황이 혼동감과 함께 심한 좌절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에 대해 위 C씨는 찬성측인 작업현장 상급자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다음과 같이 털어 놓았다.

 
2003년 11월 경찰이 한 여성을 에워싸고 폭행을 가하고 있다. <부안독립신문 자료사진>

“반핵 한 건 바보 짓 아니었냐고 물어올 때 처음에는 반박을 했다. 입장 차이로 해놓고 얘기 안 하면 되는데 주기적으로 얘기를 걸어온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빨리 ‘그렇다’고 해줘 버리고 만다. 구속당했어도 피해자라는 생각은 안했는데 이제 정말 피해자가 되버린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은 못하고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하게 될 때 기분은 속 상한 것 이상이다. 내 말을 못하게 하니까 속으로만 그 사람을 적대시한다.”

사태를 겪은 뒤 주민들은 ‘이중의 마음’을 갖게 됐다. 방폐장에 대해 자신의 속마음과 겉태도가 일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사람들은 적게는 말 못할 찝찝함에서 크게는 자책감을 느끼곤 한다. 그럴 때는 후회감까지 밀려오게 마련이다.

이처럼 부안사태라는 메머드급 태풍이 휩쓸고 간 폐허에서 지역공동체는 내면으로부터 경찰폭력의 악몽, 이웃간 경계의 시선, 정체성의 혼동 등 정신적인 후폭풍에 시름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공동체 전체가 하루 빨리 이 상처와 후유증을 밝히고 해결하려고 나서지 않는다면 안면도가 20여년간 겪고 있는 병폐는 이곳에서도 자리잡기 시작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부안사태는 지역주민들에게 단순한 ‘불운’이 아니다. 예기치 못한 외부 충격이 일어난 뒤 겪게 되는 마음의 병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정신의학자 카디너와 스피걸은 1차대전에 참전한 군인에 대한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전투의 영향력은 지우면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칠판에 적힌 그 무엇이 아니다. 전투는 인간의 정신에 영구적인 흔적을 남기고 사람을 급격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부안독립신문 2007년 7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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