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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토론할 줄 모르는 386, 우리를 더 이상 민주화의 주역이라 부르지 말자  
작성자 rosa
작성일 2014/12/12
ㆍ조회: 3780  
토론할 줄 모르는 386, 우리를 더 이상 민주화의 주역이라 부르지 말자!

요즘 이곳저곳에서 토론을 진행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뚜렷한 현안이 있어 그런 곳도 있고, 토론방법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초청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지자체나 이런 저런 모임에서 토론을 진행하면서 언제나 느끼는 한 가지 기이한(?) 현상이 있다.

우리 사회 민주화를 이끌어 왔다는 소위 386이 토론을 가장 못한다는 점이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보통 이렇다. 자기 의견을 말하기 전에 다른 사람 의견 씹고 시작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남이 말리기 전까지 끝낼 줄을 모른다. 보통 연설조 아니면 설명조다. 너무 진지하고 재미가 없다. 이야기 내용에 '민주', ‘민주주의’라는 말을 즐겨 쓴다.

나 역시 같은 386으로 민주주의를 외쳤던 사람들이 가장 비-민주적으로 토론을 하는 것까?

내가 내린 잠정적 결론은 독재 시대, 많은 사람이 침묵할 때 민주주의 목 놓아 외쳤던 그 버릇 그 습관이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탓이리라. 유년기 시절 몸으로 배운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군사문화의 세례 역시 한몫 하면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되려면 다양한 생각과 이해를 조절하고 통합하기 위해 합리적인 토론과 숙의,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야 한다. 실질적 민주주의 역사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형성된다.

그러나 토론을 하다보면 민주주의는 없다. 민주주의의 핵심적 구성요소라 할 수 있는 ‘자유’와 ‘평등’의 원리는 온데간데없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끊고 끼어들고, 말하지 말라고 강요한다. 다른 사람의 고유한 기본권이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우리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너무나 쉽게 강탈한다. 우리는 자유의 원리를 너무나 쉽게 잊고 산다.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 있는 문구일 뿐이다.

토론과정에서 평등의 원리는 너무나 쉽게 침탈당한다. 아니 그런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권리는 동등한 것이다. 지식이 있건, 지위가 높건 말할 수 있는 권리는 동등하다. 강연과 같이 사전에 미리 계획되고 동의를 얻은 토론회가 아니라면, 6명이 모여 1시간 동안 토론을 한다면 각자에게 배당된 시간은 10분 정도이다. 자기가 10분 이상의 시간을 쓰게 되면 다른 사람이 발언할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다른 사람의 시간을 쓰려면 반드시 양해 혹은 동의를 구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무얼 좀 안다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의 시간(발언기회)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무참히 짓밟아 버린다. 심한 경우엔 전체 시간의 절반 정도를 한 사람이 독차지하기도 한다.

스스로 민주주의자라고 자처하지만 우리의 의식은 아직도 다른 사람의 말을 빼앗고 평등하게 주어진 시간을 강탈하는 독재 시대에 살고 있다. 기껏해야 이제는 낡은 이론이 되어버린 ‘똑똑한 사람이 대중을 민주적으로 다스리면 된다’는 슘페터식의 엘리트 민주주의에 머물고 있다.

나를 포함한 386들이여, 이제 더 늦기 전에 우리 몸속에 깊이 박혀있는 민주주의를 혼자서 외치며 배웠던 독선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우리 스스로 대중이 되어 그들과 시간과 기회를 함께 나누자. 만약 그렇게 스스로를 바꿀 용기가 없다면 우리 스스로를 더 이상 ‘민주화의 주역’이라 칭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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