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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 말복, 처서가 지나도 날은 무척 덥기만 하군요. 몇일전 연구소 일로 경북 영주로 출장을 갈 일이 있어 오는 길에 부석사에 들려 10수년전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 앞에 서서 소백산맥의 봉우리들을 황홀하게 바라보던 그 자리에 다시 섰습니다. 차를 주차장에 대고 일주문과 천왕문 안양문을 지나면서 내심 그 시절의 황홀감을 다시 느끼고 싶은 기대감이 컸으나 막상 그 자리에 서니 그때만큼의 정취는 일어 나지 않더군요. 아마도 세월의 흐름앞에 제 마음에도 어느덧 세속의 때가 배어,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보지 못하는가 봅니다. 멀리 아스라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소백의 풍경 앞에서 존재의 깊이와 새로운 내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던 그 시절의 마음은 간데 없고 온갖 상념과 걱정들로 가득찬 탐진치 삼독에 물들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뿐이니 말입니다. 홀로 있음의 존엄 앞에 사유의 날개를 펴고 이카루스의 하늘을 날며 존재의 근원을 궁구하던 소백에서의 지난 날의 제 모습이 이제는 타인의 그것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언젠가는 밀납이 녹아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운명적 존재로 인간은 태어나 시지프스의 삶을 반복하며 살아 가는 절대자 앞에 나약한 존재라는 실존적 명구들만이 떠오를 뿐입니다. 탐이란 뭘까요, 탐욕이겠죠, 탐욕은 어디서 비롯될까요, 집착이 아닐까요, 세상에 대한 집착 진이란 뭘까요, 성냄이겠죠, 성냄은 어디서 비롯될까요, 배타심 아닐까요, 타인에 대한 배타 치란 뭘까요, 어리석음이겠죠, 어리석음은 어디서 비롯될까요, 관념 아닐까요, 내 마음 속의 고정관념 개념 규정이 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개념규정을 하려고 하는데서 파생되는 무모한 오류들 의미없는 불연속적 일상에 개념적 일관성을 강요하는 무모한 관념들 어쩌면 저 산밑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사회의 진보니 보수니 중도니 하는 것은 모두 탐욕에서 비롯된 집착과 배타심에서 비롯된 편가르기 같은 엉터리가 아닐까요 우리 사회에 유령처럼 떠돌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는 덧없는 것 아닐까요 해가 비추면 한순간 사라지는 안개가 잠시나마 우리의 맑은 시야를 차단하는 것 처럼 말입니다. 절을 내려오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중년의 나이를 실감합니다. 어느 소설가가 그러더군요 중년의 나이에는 받아들이지 못할 일상이란 없다고.. 중년이란 일상에 대한 수락을 전제로 한다고.. 중년의 고독, 중년의 좌절, 중년의 방황, 중년의 대책없음.. 이제 다시 세속으로 내려왔습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함석헌의 '가을'이란 시를 함께 읽으며 돌아올 가을을 기다려봅니다. 가을 가을이 오면 산이 그리워 산에선 누가 기다리나 아무도 기다릴 이는 없어 기다릴 이 없으니 산이 그립지 가을이 오면 바다가 그리워 바다에선 누가 오라나 아무도 오랄 인 없어 오라 할 이 없으니 바다가 그립지 가을이 오면 고향이 그리워 고향엔 누가 남았나 아무도 남아 있을 이는 없어 남아 있을 이 없으니 고향이 그립지 가을이 오면 그리워요 누가 그리워 누가 그리운지 나도 몰라요 누군지 모르니 그립고도 그립기만 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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